2007 Bern, Switzerland     
      
      내내 비가 올듯말듯 찌뿌둥하더니 스위스로 떠나는 아침이 되서야 파란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축구시합이 있는지 몰려든 응원무리로 떠들석해진 슈투트가르트역을 떠나
      취리히에서 한번 기차를 갈아타고 베른으로 향했다.
      유럽의 기차는 중간중간 정차하는 일이 많아 초행길에 정신을 놓고있다간 원하는 역에 내리지못하기 십상일듯하다.
      독어,불어,영어의 간단한 방송을 듣고도 맘이 놓이질 않아서
      이곳이 베른이냐고 옆에 앉아있던 소녀에게 다시한번 확인하니 읽던 책에서 눈을돌려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내리던 내게 눈인사까지 해줬던 블론드야 넌 참 예뻤단다.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대자연의 이미지때문인가 사람들도 웬지 순박하고 친근하지 않을까하는 내 생각과는 달리
      첫 인상은 funky.
      역주변에선 방황하는 10대 스타일을 프랑스나 독일보다 빈번히 볼 수 있고
      심지어 호텔위치를 물어본 경찰조차 가벼운 비쥬얼락계에 피어싱을 하고 있다.
      호텔과 역사이에 있는 대학 잔디밭에는 저것들 모여서 약하고 있는거 아냐 하는 느낌의 그룹들이 적잖이 있으며
      혼자 저녁을 먹을땐 할아버지의 유혹을 받는둥 첫날의 베른의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도를 펼치고 내일 스케줄을 짰다.
      교통수단과 관광포인트가 자세히 나와있는 지도를 보며
      슈투트가르트때도 그랬지만 이런 세심한 부분에서 다시한번 선진국임을 실감한다.
      다음날 아침 호텔프론트에서 지도로는 얻을 수 없었던 몇가지 정보를 확인하고 출발.

      베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커다란 테마파크다.
      미술관, 박물관, 성당, 로즈가든, 베어가든(베른의 상징은 곰이다. 참고로 슈투트가르트는 말)...
      역을 중심으로 사방, 곳곳에 숨어있는 명소들을 찾아 코끼리열차를 타듯 버스와 트렘을 이용해 돌아다니면 되는거다.
      난 자유이용권에 해당되는 베른카드를 구입했으니(24시간동안 모든 교통수단 모든 박물관&미술관 공짜로 이용가능)
      남은건 시간싸움뿐.

      박물관은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곳이 많았는데 이건 뭐 어른도 재밌으니 애들은 말할것도 없다.
      그 전문성과, 그걸 쉽게 풀이한 예들과, 인터렉티브한 구성등
      도대체 이런건 누가 생각해서 만드는거야, 니들의 얼굴이 보고싶다!! 라는 알수없는 분노와 함께
      이곳의 아이들이 어떤모습으로 성장할까 생각하니 괜히 허무한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다시 오지는 못할거란걸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또렷이 기억하려 애쓰며 해질 무렵의 햇빛을 만끽했다.
      서서히 색을 달리하는 그 눈부심속에서 어제와는 다른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것이 베른의 모습인지 잠시 들르는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여행막판의 피로와 맞설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는 사실엔 틀림없었다.


      


      


      


      

      
      


      


      


      


      


      


      


      


      


      


      


    


      


      


      


      


      


      


      


      


      


      


      


      


      


      


      



      


      


      


      


      


      


      


      


      


      


      


      


      


      


      


      

      


      


      







     ::: epilogue :::

      
     
      파리행 새벽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피로가 몰려온다.
      세탁기소린지 옆방에서 들려오는 윙윙대는 소리에 잠을설치고
      늦잠잘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탓에 앉자마자 눈이 감겼다.
      이어폰을 꽂고 창에 기대니 서서히 기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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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여행 한번 가기 힘들어
      뭐 좀 할까하면 잠은 쏟아지고
      괜히 바빴던 하루 내게 남은 건 뭘까
      허무하기만 해

      알 수가 없는 친구들 얘기
      언제부터 이만큼 멀어진 건지
      그저 옛날 얘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
      멋쩍은 웃음만

      sunshine like a blessing in disguise
      때론 나만 혼자 뒤쳐진 것 같아
      a ray of sunshine like a blessing in disguise
      가끔은 너무 힘들어

      나는 왜 이러지 내가 뭐 그렇지
      이런 말은 절대로 하지 말기
      아무 대책 없는 막연함이라도
      괜찮아, It's gonna be all right

      비교하지 말고 약해지지 말고
      바보같이 먼저 겁내지 말기
      지금 이런 내 모습을 사랑해줄
      한 사람쯤은 있겠지

      sunshine like a blessing in disguise
      때론 나만 슬픈 외톨인 것 같아
      A ray of sunshine like a blessing in disguise
      지금 주저앉고 싶은 그대
      손잡을 곳 없어 지친 그대
      지금 기대 울고 싶은 그대에게

      sunshine / sweet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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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저만치서부터 날이 밝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가는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마음 한구석을 묵직히 누른다.
      일을 그만두고나서 도망치듯 떠나 아무생각 없이 쉬고 즐기고 오겠다 했지만
      새롭고 신나는 일들 사이에서

      나의 일과
      가족과
      지난연애와
      내쳐버린 친구에 대해
      여느때보다 많은 생각을 했고
      어느것하나 마침표 혹은 느낌표를 찍지 못한채 다시 파리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한걸음 멀찍히 떨어져서 차근차근 곱씹으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뿐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기에 선뜻 혼자하는 여행을 선택했던것이리라고..
      눈과 코에 뜨겁고 붉은 기운이 올랐다, 다시 명치께에서 비가내리듯한 싸한 느낌으로 고개를 휘젓기를 수백번.
      그 프로세스를 거치는동안 떨어지는 답은 없지만 마음은 대체로 단단하게 단련되고
      그것과 모순되게 유약한면은 더욱더 말랑말랑해져 한정된 사람에게만 허락하게 된다.

      조금만 더 연습하자..

      Gare de lyon에 내딛는 발이 지면에 기분좋은 무게감으로 달라붙는건
      조금 무거워진 짐과 늘어난 몸무게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언니집으로 돌아가는 TGV 출발시간까지 남은 6시간가량은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있었는지
      Eiffel Tower에서부터 Montparnasse까지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마지막 목적지 Angers st loud역에 도착하니
      내가 내리는 문앞에 떡하니 서있는 브누아와 헐레벌떡 플렛폼으로 달려오는 언니가 보인다.
      피자두판을 사서 집으로 향하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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